죄와 벌 도발과 생각들



며칠 전 흔치 않게 캄보디아에서 한국 영화가 개봉해서 보고 왔다. 당연히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과함께'를 4D로 보고 왔다. 구분지어 종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신과 함께에 나온 대부분의 사상이나 믿음들은 한국의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에서 기반되었다. 구전으로 흩어져 있던 내용들을 잘 구상하여 웹툰으로 그렸고 다시 영화가 된 것이다.

웹툰을 볼 때도 신기하면서 놀라움을 느꼈는데, 아마 그 이전에 종교의 기원 같은 기독교의 근본을 다룬 책이나, 동양 사상 중 불교를 보더라도 윤회사상과 선업지수(카르마)가 웹툰에 모두 들어 있고 그것은 우리의 전통사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내포된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소설 타나토노트를 읽고 나서 누구든 나에게 다음 생을 물어보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형태의 지옥도 내가 받아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를 통 틀어 윤회를 한다면 그냥 식물로 태고 나고 싶다. 바로 그게 내가 현생에 저질렀던 벌들에 대한 죗값이라고 믿는다. 식물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사실 식물을 혹사하는 것이고 더 잘 혹사하기 위해 사람을 괴롭히고 대지를 더럽히고 있기에, 그 결과가 긍정적이더라도 이생에서 얕은 칭송은 받을 수 있으나 내생에서는 그저 내가 혹사했던 그 존재로 태어나고 싶을 뿐이다.

극단적인 죄악이라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타인과 나를 제외한 만물 중 어떤 것이라도 해롭게 하는 것인데, 천칭을 놓고 볼 때 내가 태어남으로써 준 기쁨이 살아오면서 준 행복과 같을까? 살아가면서 해악을 끼친 것이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준 것 만큼의 크기가 될 것인가.
오늘 난 생각했다. 20대 까지 성장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지르며 가족에게 받아온 것들을 지금 나는 되돌려 주고 있는가. 20년간 나에게 험한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아무 말도 않고, 나 역시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데 과연 내가 저지른 그 죄들에 대한 벌은 내생에서 치를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내가 받았던 것들은 뒤돌아 보면 나의 죄악이며 업보이고 영과 그 이하로 가는 나의 선업지수 일 뿐이다. 이 죄를 갚고 싶은 마음도 없고, 불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도 않는다. 늦었지만 이 죄들이 나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것을 깨달은 것에 감사하고, 현생에서 갚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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