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농촌의 가치
지구에서 처음 생명체가 생겨난 것은 38억년 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우연을 거쳐 황화세균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생겨났고 물 속에서 육지로 생명체가 이동했으며 또 한참 뒤에 포유류에서 인류가 탄생했다. 최초의 인류는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털로 뒤덮혀 있고 네발로 다녔다. 진화를 통해 두발로 일어설 수 있게되고, 단단한 턱과 큰 뇌를 가지면서 언어가 생기고 지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지능이 발달하고 도구까지 사용하면서 사냥이 더 쉬워졌다.
최초의 농경에 대해서 이전까지는 농경이 먼저 발달하고 남은 식량으로 부족과 종교가 발달했다고 믿어졌으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계급과 종교가 먼저 발달하고 농경을 통해 비노동계층에 식량을 공급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농경이 인류의 먹거리 걱정을 해결했다는 점에서는 한치의 이견도 없을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농부들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수렵과 채취만으로 식량을 충족할 때는 더 적은 시간에 일을 하고 먹을 것만 구하면 됐었지만, 농경이 시작되고나서는 일년내내 일을 해야했다. 아마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동안은 연중 쉬지 않고 일을 해야했고 한편으로는 수렵과 채취보다 적은 양의 식량을 생산하면서 증산의 압박도 느꼈을 것이다. 농경이 시작된 이래로 농민들은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었고, 현대에서도 대부분의 농민들의 소득은 풍족하지 못하다.
부유한 국가에서는 더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절대빈곤과 기아를 겪는 인구가 많다. 돈을 버는 기업농들은 농업을 식량 생산만으로 보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산물은 사료가 되고 연료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기르는 모든 행위를 농업으로 여기고 있다. 기업이 비대해지면서 자경농의 위축되고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이들은 자연스레 임금농이 되면서 최초의 농업인들과 같은 처지가 되고 있다. 쉬지 않고 일을 하지만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의 소득에 불과한 돈을 벌고 있다. 비약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거대자본과 임금농의 처지를 비교하면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소규모 농장들이 즐비하다. 이론적으로는 200ha 이상을 대규모영농(플랜테이션 농업)이라고 하지만 지역마다 규정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우에 따라 30ha를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경제적 논리로만 따지면 이 모든 소규모 농장들은 사라지고 대형화되는게 맞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소규모의 농장들이 실제 식량의 70%를 공급한다. 대부분 플랜테이션에서 공급되는 식량은 사료나 기호식품들이며 선진국 국민들을 위한 농업이다.
오늘 베트남 북쪽 끝에 있는 농촌마을을 보고 왔는데, 산 비탈에 100평도 채 안되는 땅을 일구어 이것저것 심어놓고 있다. 벼와 옥수수를 기본으로 재배하고 있지만 담배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 태초의 농민과 같은 모습이다. 최소한의 식량과 소비자(권력자)를 위한 담배 생산.
우리가 이들에게 어떤 것을 재배해서 돈을 많이 벌라고 할 수 없다. 또는 농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으라고 할수도 없다. 몇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기 때문인데, 가장 큰 문제는 삶의 터전이다. 이 지역의 많은 소수부족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재배방식이나 작물도 수백년 이상 이어져 온 것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바꾸라고 할 수 없다. 두번째는 환경의 문제다. 이들을 완전히 이주시키고 이 지역을 태초의 모습으로 돌려 보내지 않을 것이라면, 농업을 유지해야만 지역이 보존된다. 누구도 살지 않는 마을이 아니라면 농업을 지속할 수 밖에 없다. 또 이런 소규모의 농지, 경사가 심한 지역은 아직까지 최첨단 장비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다시말해 이 농지들을 버릴 것이 아니라면, 관행대로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식량공급의 문제다. 이들 지역에서 식량공급이 끊기면 그만큼 다른 지역에서 식량 공급을 위해 경쟁해야하기 때문에 국내 농산물 가격은 상승하게 되고, 수출과 내수 공급이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물론 해외 다른 지역도 고스란히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고 어렵지만 원시적인 농업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에서 현대의 기술을 적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농업을 선택한 이상 그 터전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역 농민들은 죽을 때까지 그 땅을 지키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이 가지고 많은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량공급이다. 최근 여러국가에서 보듯이 조금만 엇나가도 금세 모자라는게 식량이다. 앞에 말한 것처럼 농민들의 무한한 노력으로 우리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