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과 생각들

새로운 일과 뇌 가소성

chongdowon 2025. 6. 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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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가소성(뇌의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은 뇌가 환경, 경험, 학습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서 뇌가 구조적, 기능적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퇴행성 뇌 질환들의 경우 외부의 물리적인 충격이나 음주, 흡연 등의 영향이 아니라면 뇌 사용을 부분적으로 하게 되면서 나머지 부분들이 퇴화하게 된다. 반면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 육체 노동이든, 앉아서 머리를 쓰는 노동이든 - 처음에는 굉장히 적응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진다. 바로 뇌 가소성 때문이다.

꾸준히 책을 읽던 사람은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르다. 특히 평소에 읽던 분야나 장르라면 읽는 속도와 함께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뇌는 이미 익숙한 것에 대해서 발달해 있어서 쉽게 수용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특정 영역을 꾸준히 학습하면 뇌의 특정 부위도 물리적으로 발달한다고 한다.

다른 원인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퇴사 후에 삶이 무너지는 사례들을 보면 뇌와 몸을 예전과 같이 사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들이 종종있다. 이 비효율적인 뇌는 꾸준히 사용해야만 그 가치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뇌와 함께 우리 몸도 무용지물이 되는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퇴사 후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글을 쓰는 일을 했다. 물론 몇가지 일들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들은 아니지만 대체로 책상 위에서 하는 일 많았고, 익숙했으며 빠르게 처리했다. 그런데 지난 2주간은 가끔씩 하던 일이지만 익숙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일을 했다. 물론 지금도 끝이 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중간 정리는 하는 시점에 한숨 돌리며 끄적이고 있다. 

머리에 열이 나고 쥐가 난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아마 내 머릿속의 신경세포들은 쥐가 났겠지만 감각기관과 연결되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쥐가 나는 걸 알 수 없었지만, 느낌으로는 강렬하게 쥐가 났다. 중년이 되어가면서 새로운 도전이 싫을 때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새로운 운동을 해야하고,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고,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를 해야한다. 물론 새로운 것들을 배제하고 익숙한 것들만 내 주변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충분히 즐겁고 넉넉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인간은 지능이 높은 영장류이기 전에 살아있는 생명체다. 밥 먹고 숨쉬는 것은 지구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가 할 수 있는 똑같은 행위일 뿐이다. 에너지를 받고 소비하고 배설하는 것. 그것만으로 삶을 영위하기엔 고지능 영장류로 태어난 우리의 에너지가 너무 아깝지 않을까.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생명체로써의 첫번째 의무이자 사명이다. 두번째 의무는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높은 지능을 개인과 주변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게 어떨까. 뇌의 가소성이 있다고 한 것처럼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일렬로 줄을 세워서 누구보다 잘하고 누구보다 못하는 일을 찾는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 뇌를 써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