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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3 11:49
장남인 할아버지 장남인 아버지에 이어 세명의 딸을 거쳐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다. 가진 것 없는 집에서 아들에게 좋은 이름이라도 주고 싶어서 이름을 얻어 왔다. 읍내에 한약방을 하던 집이 우리와 같은 성씨 본관이었고 마침 그 집 손자도 곧 태어날 예정이어서 같은 이름을 가져 왔다고 한다.
문제는 같은 해 출생이고 이름이 정확히 같다 보니 초등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자 겹치는 친구들이 생기게 되면서, 친구들은 신기하게 생각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곤 했다. 아직까지도 원래 이름 주인을 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이름이 좋지 않다고 바꾸자고 했는데, 이름 바꾸는 것도 부담이거니와 바꾸려고 가져온 이름이 불알친구와 같은 이름이어서 완강히 거절했다. 아마 그 때 그냥 이름을 바꿨으면 그 뒤로 계속 이름 부르는 일이 피곤했을거다.
작명은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제목이 절반은 차지 한다. 제목에 본문이 있어 남들이 쉽게 문맥을 이해할 수 있게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름은 다르다. 속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미처 알기 전에 이름을 먼저 붙인다. 큰 목소리로 짖어대는 우리 개들의 이름은 귀엽게도 베티와 블루다. 행동하는 것을 기준으로 이름을 정하면 악동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주고 훌륭한 인생을 살게 하려고 했지만, 세상은 이름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름 보다는 물려준 유전자, 부를 포함한 생활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이름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껍데기를 치장하는 것 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으로 매듭지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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