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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과 생각들

친정과 뜰

by chongdowon 2025. 4. 3.

친구들은 부모님댁을 본가라고 하던데,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나와 살아서인지 나는 항상 포항집이라고 한다. 같은 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한 곳에 정착한게 아니라 지역을 조금씩 옮겨 다니다 보니 새로운 집에 대한 애착은 별로 없이 살고 있다.
잠시 포항집에 들렀다 가는데 집에 머무는 내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만 하는데도 계속 졸리고 책이 안 읽혀진다. 마당을 걷고 고양이 만져주고 화단을 둘러보고 와도 다시 졸린다. 그런데 오늘 서울역에서 수속을 마치자마자 그 짧은 시간임에도 책이 읽힌다. 막혔던 부분이 술술 넘어가고 졸리지도 않는다.

원래 살던 집에서 분가한 경우 원래 집을 본가라고 한다. 결혼한 남자들이 흔히 쓰고, 여자도 본가라 쓸 수 있지만 친정이라고 많이 쓴다. 친정에서 정은 뜰을 뜻하는 한자다. 포항집은 고향집은 아버지가 짓고 평생을 살았다. 나에게는 포항이 고향이 아니고 우리집이 고향이고 마당이며 앞뜰뒷뜰이다. 그래서인지 집에만 가면 졸리고 무기력해진다. 밥 먹고 누워서 구르고만 싶어진다.
포항집은 본가가 아니고 나한테도 친정이 맞나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뜰 말이다. 하지만 물론 언젠가는 내 뜰이 아니게 될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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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집(이든 본가든 친정이든, 부모님이 계신 계셨든 공간)에서 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물질적인 공간이 주는 감정과 더불어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기억이 어우려져서 지금의 현실 공간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뜰이라는 공간은 태어나고 유아기 청소년기를 한 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물질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가 무의식 중에 주는 안락함이 더해졌기 때문에 강력해진다. 공간적으로 풍파를 맞았고 관계로도 365일 편안한건 아니지만 기억과 추억이 혼재된 무의식은 뜰에서 안정감을 준다.

 

https://youtu.be/Snat-i1WP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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