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하는 곳에서 집에 가려면 차를 5시간 타고, 비행기를 5시간 타고, 기차를 1시간, 2시간 탄 뒤에 다시 차로 10분을 가야한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한번 이동하는데 20시간은 족히 걸린다. 산 넘고 물 건너, 문장 그대로 멀고 긴 여정이다.
아버지는 흙에서 태어나 평생 흙을 밟고 흙으로 돈을 벌다 좁은 병원 침상에서 돌아가셨다. 돌고 돌아 한 몸 누윌 수 있는 장소에서 끝을 맞이하셨다. 80년이 채 되지 않은 삶이 어땠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많은 아쉬움과 후회가 있지 않았을까. 비교와 욕심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자식을 많이 사랑했기에 당신의 안위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자식들에게 더 많이 해주지 못한 후회가 있었을 것이다. 오랜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에 대한 기억과 농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걸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종교가 없고 영혼도 믿지 않기에 돌아가신 분이 더 좋은 곳으로 가셨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살아 계실 동안 세상의 어떤 고통도 없었길 바랄 뿐이다. 병으로 인한 아픔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치매로 평생 가져온 깊은 기억 속의 그리움과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다.
20시간 편히 차와 비행기에 앉아서 가는 여정도 길고 험난하기만 한데, 숟가락 하나 없이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형제들과 자식을 키워 낸 80년의 여정은 얼마나 더 험난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여정에 아쉬움이 없었고 바른 길이라 믿고 끝내셨길 소망할 따름이다.
가신 분의 아픔은 이제 그 육신과 함께 사라지고 이제 남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또 함께 영원할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남은 사람들이 하면 되니 미련없이 멀리 가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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