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을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농업을 하면서 먹는 재료와 먹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쌀을 다루는 방식과 그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을 만들고 먹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결국 고급식문화 또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재료를 잘 다루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의 술의 재료와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술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다. 역시 동양은 반주다. 식사와 함께 먹는다. 서양은 곁들여 마시는 정도이거나 술과 밥은 따로 즐기는데 특징인 것 같다.
술을 밥과 함께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어울린다. 우리나라를 보면 1차 2차 3차 먹고 또 먹는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이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고 하지만, 전채 본식사 후식의 코스를 생각하면 별로 다를 바 없다. 국밥 나오기 전에 깍두기에 한잔하고 국밥에 들어 있는 고기로 한잔하고 마무리로 국물로 한잔 더 할 수 있다.
차수가 늘어나는 것은 구성원이나 장소 혹은 안주와 술이 바뀌면서 새롭게 먹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룻동안 여러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차로 나누어 술 먹는 우리 문화가 상당히 진보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차수를 나누면서 먼저 갈 사람, 나중에 오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 물론 파도타기, 러브샷, 술자리게임, 폭탄주 등 다양한 술자리 문화가 있고 이 모두는 권주의 형태로 술 마시기를 종용하는 방법이다.
여담이지만 얼마전 있었던 아버지 장례식에서 내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 1,2,3차를 했다. 장례식장의 환경을 고려해서 가장 먼 자리에서 1차를 하고 조문객이 거의 다 빠진 늦은 밤에 3차를 상주와 안주가 가까운 곳에서 시작했다. 한 공간에서 장소와 구성원, 안주가 바뀌는 전형적인 형태이면서 장례식장이라는 장소와 그 주인공을 배려한 모습이다.
캄보디아에서는 당연히 1,2,3차의 개념은 없다. 한자리에서 계속 마신다. 대신 안주가 계속 나온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한 자리에서 안주를 다 먹기 전에 다른 안주가 나온다. 그리고 권주하는 문화가 강한 편이다.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꽤 술을 권하고 특히 잔을 끝까지 비우도록 종용한다. 상하문화도 강해서 손윗사람이 권하면 거절하기 어려운 문화도 있다.
지금 지내는 베트남 북부의 까오방은 조금 다르다. 첫번째 특징은 1대1로 잔을 부딪히고 술을 마시면 악수를 한다. 한명과 여러명이 건배를 하면 번갈아 악수를 한다. 여러명이 동시에 건배를 하면 손을 다 같이 모으고 1,2,3, 위 (화이팅 비슷)를 외친다. (다른 지역도 1,2,3 원샷 이런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1:1로 건배하는 것을 초대라고 표현하며 자주 초대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일종의 권주 압박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술잔 돌리기와 비슷하다. 대신 잔을 비우도록 종용하지는 않는다. 가끔 잔을 비우라고 하지만 건배 자체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 상하문화는 있지만 강권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은 적다.
주로 만찬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또래 문화나 일상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안주는 대체 오리, 닭, 돼지, 소, 생선 등 골고루 나온다. 대신 1차에서 끝나고 2차를 하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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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비교우위는 없지만 술을 따라주는 문화는 확실히 우리나라가 특이한 지점이 있다. 혼자 따라 마시는 꼴을 못 보는데,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모두 비우면 알아서 따라주거나 직접 따라먹거나 남은 잔에 첨잔을 해서 따라준다. 우리도 조선시대에는 직접 따라 마시고 특별한 경우 왕이 하사해서 따라주거나 옆에 시중이 있으면 따라 줬다고 한다. 굳이 빈잔을 찾아 따라주는 것도 권주이면서 강권이 아닐까 싶다.
차수를 나누는 것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지만 매 차수마다 너무 마시는건 오히려 부담은 맞다. 동아시아에서는 안주가 조금씩 천천히 오래 나오면 한자리에서 꾸준히 먹는 것도 차수를 나누는 것 만큼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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