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장자 얘기에도 있지만 아무리 큰 새가 있더라도 정말로 큰지 확인하려면 그만큼 큰 자가 있어야 한다. 정확한 시계가 근대사에서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규칙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산업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증기기관은 정확한 시간에 한바퀴를 돌고, 거기에 맞춰 바퀴가 구르게 된다. 기차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고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면서 대기하는데 소모되는 각종 비용이 절감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확한 시간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컨베이어 벨트 같은 조립공정도 가능해졌다. (비약이 좀 심하긴 하지만..)
새로운 사무실을 운영하게 되면서 근무시간에 대한 고민이 조금 있다. 꼭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해야 할까. 점심은 꼭 1시간이어야 할까. 과거 산업에서는 특히 농업에서는 많은 노동력이 동시에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에 근무시간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도 중요했다. 덧붙여 식사를 여러번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대규모 식단을 한꺼번에 조리해서 준비해야하는 과정도 있어 식사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산업공업화가 되면서도 마찬가지다. 생산 공정에서 한사람도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동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동시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이 속도를 올리면 생산량이 증가하고 개개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불량률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의 업무는 이와는 다르다. 다수의 사무원이 있다고 할 때 1번 공정에서 5번 공정까지 일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각자의 업무가 마무리되면 직렬이나 병렬로 연결된다. 때에 따라서는 점심시간에 일을 더 할 수 있고, 특히 시차가 있는 해외와 연결되는 업무인 경우에는 탄력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아낄수도 있다.
사무직원의 생산성을 생각할 때 과연 인간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책상에 앉아서 집중할 수 있을까.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4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외 시간은 잡담을 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업무외적인 행위를 한다. 물론 이런 딴짓들이 업무에 긍정적인 영향도 끼치기 때문에 업무시간에 포함시켜 준다. 선사시대에 우리가 사냥을 나가면 과연 8시간씩 집중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집중 탐색을 두어시간 하다가 쉬면서 창이나 칼을 동물에게 꽂을 시간을 기다리고 마지막 몰이 이후 실제로 창을 꽂는 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도 해가 떠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해가 없으면 인간은 나약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시계가 정해준대로 6시에 기상하고 8시까지 출근해서 12시에 점심을 먹고 17시에 퇴근을 한다. 서머타임을 적용하는 지역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도 연중 해의 길이에 따라 일출일몰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생체 시간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정해준 시간과 똑같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농부들은 표준시 보다는 음력과 하루의 해 길이를 더 따진다. 더운 시간 야외 노동을 피할 수 있고, 해 진 뒤에는 작업이 안전하지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 또 요즘의 과학과 경험치 이른 아침에 농약을 치거나 해 진 뒤에 물을 주는 것이 더 좋다고 밝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서 사무실 근무의 정시출퇴근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야근수당이 없다면, 정시에 출근하지 않아도 휴대폰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나는 밥을 30분만에 먹고 다시 자리에 앉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오늘 할일을 오늘 다 마칠 수 있다면 정해진 시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급여는 앉아 있는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하는 업무량과 결과물에 비례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맞기 때문이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지만 제 기능을 하는게 아니라면, 조금은 탄력적으로 자율적으로 시간을 적용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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