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없는게 인간이가'라고 20대 알바로 도로다리 만들 때 사장이 하던 말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세대 갈등 문제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동년배라도 개인의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지고 의견이 갈리게 된다.
대한민국 전후세대들은 급변하는 국내정세에 적응하기 힘들고 교육도 부족했다. 천민자본주의라 욕 먹더라도 자본의 맛을 아는 일부만 돈을 벌고 나머지는 국가만 믿다가 폭망했다.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맞이했고 노력은 했지만 불완전했다. 물론 누구나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게 문제다.
한국보다 20년 이상 뒤쳐지는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또 그 보다는 발전했지만 베트남에 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60-80세들의 삶의 궤적을 옅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부모세대의 고충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엄마는 순조롭게 21세기에 안착한 듯 하다. 적절하게 정보를 활용하고 국가의 제도를 누리고 있다.
순응만이 답은 아니듯이 내가 살아온 길이 정답도 아니다. 우연히 얻게 된 행운과 같은 성공은 자연계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확률일 뿐이다. 눈치없이 자신의 성공이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뤄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70년간 그렇게 살아서 성공한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 중 한명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옳든 옳지 않든 그때의 방법을 다시 나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나는 시간의 정방향과 역방향을 같이 겪었기 때문에 나에게 무슨 짓거리를 시도하는지 알고 대응했다. 일부러 큰 목소리로 하나씩 따지면서 말해줬는데 눈치를 못 채면, 그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착했거나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말하지만 나는 참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목소리는 더 크게 말은 더 빠르게 대응한다.
다른 경우로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해 주고 가진 것을 퍼주려고 해도, 가끔은 또 눈치없이 들이대기만 하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참고 대답하고 들어주는 이유는 내가 착하거나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도는 해 줘도 손해 보는 일이 아니고 해줘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칼자루 쥐고 있는 사람은 칼을 휘두루는 것보다 그냥 얘기를 듣는게 더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변한다. 모든 생명체는 변한다. 모든 무생물도 역시 변한다. 눈치 없이 계속 덤비다가는 변화의 속도가 인위적이게 될 것이다. 두번 정도 덤벼보면 감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까지는 있는 그대로 말 얘기해줘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서는 도태될 것이 뻔하다. 아마 처음으로 겪어 보는 상대적 열위나 약세일텐데, 공생과 공존의 손을 내밀 때 받는 것이 좋다만, 대체로 눈치없는 종자들은 손을 뿌리치기 마련이다. 도태의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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