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복복서가, 2025년 04월 06일
메체들이 다양해지면서 누구나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알리려면 글을 잘 써야하고 인쇄까지 한 다음 사람들에게 읽혀져야 했다. 혹은 연설을 하기 위해서는 대중 앞에 나아가 설 수 있어야 하고, 좌중을 흔들 수 있는 말의 힘을 가지고 연셜을 해야 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유튜브 같은 글과 사진 또는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 보내고 있지만, 갈수록 전달력은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
결국 매체의 다양성을 떠나서 적합한 표현방식으로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잘 꾸려나가는지가 관건이고 실력이며 현대 사회에서는 돈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은 읽으면서 내 이야기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이 되면서도. 글의 앞에서 나이를 밝혔음에도 나와 비슷한 연배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전후 2차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하는 나는 소위 386 세대와는 띠동갑으로 나이 차이가 꽤 있지만 글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아마도 작가의 고민은 동년배들의 고민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지 않을까.
마침 글을 읽는 동안 친구들과 제사나 술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딱 우리가 더이상 제사를 유지해야 할지 말지 과거의 문화를 어떻게 청산할지 고민하는 것과 작가는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또 "세상이 부모에게 부여한 앎의 권력"과 같은 문장 역시 우리가 늘 고민하고 있는 부분인 사회에서 나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드러내야 할지 고민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나의 삶을 내가 꾸린 가정이 아닌 부모나 이전의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급작스럽게 산업화를 마무리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오면서 전후세대들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경우가 많다. 불과 며칠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카톡을 쓰지 못했으니.
나의 남은 삶의 여정은 어떨지 고민하게 된다. 결정된 바는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목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돈을 벌면서 적당히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살다보니 간절함이라는게 없다. 오히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어서 또래가 고민하는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자식과 나를 위해 삶의 부를 이분할 해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두배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착같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해외여행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면 지금의 금전전 풍요로움이 굳이 필요한가라는 고민을 같이 하게 된다.
시작도 과정도 알 수 없었지만 끝도 알 수 없는게 삶이다. 내년의 기획, 그 다음의 목표 정도는 가지고 있지만 과연 실현될지 알 도리는 없다. 하던 일을 꾸준히 하고 가끔 새로운게 보이면 한번씩 간 보다가 잘 맞으면 계속하고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지 않을까. 매번 새로운 것을 하는 것도 가끔은 지치지만, 계속 하던 일을 하는 것도 어떨 때는 진저리가 날 때가 있는 법이다. 불변의 진리는 없는 것처럼 세상은 아무리 곧게 가다듬으며 살아가려고 해도 닳고 비뚤어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자체의 수복 기능이 있는 DNA도 시간을 거듭할수록 이기지 못해 결국은 온갖 불필요한 정보들도 함께 담고 있을까.
이 책은 이렇게 사는대로 살아라 하고 얘기해 주는, 선배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로 들려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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