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드 포스팅에서 본 글이다. 베트남 속담인데 나이만 들면 아무 책임도 없이 상전이 되는 현상을 비꼬는 말이라고 한다.
십 여년 전 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담론들이 형성되고 있다. 아마 전세계 어디를 가도 어느 역사에서나 비슷한 고민이 있었지 않을까. 인간의 편견이라는 것은 진화의 결과물로 생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전의 시대를 보면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많은 장소, 위험 요소가 없는 길을 찾아 내는 능력을 갖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오래 살아 남아 나이가 들면 촌장이 됐을 것이다.
인구가 조금 더 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벌써 이런 가치는 의미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식량이 풍족해지면 굳이 멀리가서 채집을 하거나 위험한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농사법이나 먹거리를 찾아내는 도전적인 사람이 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은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 확률이 높다. 살아남은 사람은 부자가 되거나 칭송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단계에 가기 전에 죽음을 맞이 했을 것이다.
우리라나는 이미 100세 시대라고 한다. 내가 30대 초반에 80세 만기로 가입한 보험은 100세 만기로 약관이 바꼈다. 70세 이상이 되면 치매보험, 요양보험 등 고령을 위한 보험들이 즐비하게 있어 가입을 유도한다.
걸리버여행기에 보면 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0여 년전에 읽은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죽지 않기 때문에 걸리버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살아있기만 할 뿐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현재 세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힘을 빌러 더 오래 살 수 있다. 단순히 의료기술의 발달을 넘어서서 어떻게 먹고 입고 자야하는지 더 잘 알게 되면서, 유전적 혹은 환경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100세까지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모두가 어르신이 되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겪었던 친척과의 일들에서 직접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본인들은 스스로의 노력보다 외부의 도움으로 오래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어르신 행세를 한다는 것을 눈으로 봤다. 오히려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의 40대의 강인함과 노력, 50대의 성숙함은 어디에 간 듯 없고, 60이되고 70이 되자 그 나이가 당연한 듯 젊은 세대들에게 요구를 하고 강압을 한다. 기억이 흐려진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지 사실 관계를 오도하고 스스로에게 유리한 말만 내어 놓는다. 다행인 것은 그 말을 검증할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고, 애석한 것은 스스로를 이미 속이고 이해시켜버린 뒤라서 앞뒤의 사실관계는 따져봐야 소용이 없다.
법과 제도가 갖추어진 현대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반드시 지혜로움이 아니고, 또 그들의 경험이 반드시 국가 경영에 도움이 되는 바도 아니다. 노령운전자 면허증 반납 제도와 같이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제공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물론 강제되어서도 안되고 물리적으로 숫자를 정해서도 안될 것이다. 사회에서 1차로 은퇴하는 시기에 맞춰 노령연령을 위한 새로운 교육을 통해 그들이 혹은 미래의 내가 가야할 곳을 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70세가 넘어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고 그들의 활동을 존종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기에 우리 사회는 앞으로 빈번해질 문제들에 대해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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