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우면 영어 이름을 하나씩 갖게 된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경우에 따라 세례명이나 법명을 받는다. 영어 이름을 계속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대학교 회화시간에 만든 영어이름을 수업외에 쓴 적이 없다. 한글로 된 세글자의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영어나 캄보디아어로 인사를 할 때 성으로 소개한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성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게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인 경우도 있고, 베트남처럼 성이 무의미한 경우도 있어서, 사실 내 성으로 나를 소개하는 것은 현지 문화에는 전혀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남의 이름을 본인 입맛게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냥 어떻게 알려줘도 노력없이 본인 원하는대로 기억하고 불렸던 기억이 있다. 첨부터 부르기 더 편한 이름을 알려줬어야 싶기도 하다.
지금은 술자리에서 이름을 부여 받았다. 지금의 이름과 내 이미지와 비슷한 베트남 유명 남성 연예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문제는 일단 내가 발음하기 어렵고, 갑자기 부여받은 베트남식 내 이름을 내가 기억하기 어렵다. 오직 술자리에서만 사용되는 이름이다. 그리고 나는 정의내리는 것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는데서 불쾌감이 있었다. 내 이름에 대해서 다른 글에서도 적은 적 있지만, 이름에 대해 자부심이나 부모로부터 받아서 소중한 감정 따위는 없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고 이름으로 내가 정의되는게 아니라 나로써 이름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름을 받고 나서 계속 떨떠름했는데 세번째 만남에서는 본인이 나에게 한국식으로 좋은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이름을 통해 친밀감을 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종의 축전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명이나 세례명을 받듯이 혹은 호를 타인에게서 선물받듯이 의미를 담을 이름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이 이름을 즐겨 쓸 것 같지는 않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 이름이지만 내가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름을 받고 이제 이름을 하나 지어줘야 하는데 어떤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지 고민이 생겼다. 이름으로써 정의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전하는 이름이 그에게는 나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나타내는 지향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에 부여된 의미로 나는 앞서의 관계에서 편견과 오해를 한순간에 지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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