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식사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조금 생각하다가 답장을 적었다. 나도 고민해 볼 문제여서 보낸 내용 그대로 포스팅한다.
-
저는 작물전공으로 농업과 농촌개발을 하던 사람이어서 ODA는 잘 모릅니다.
큰 틀에서 농업생산성향상, 가공, 마케팅, 판매에서 저는 생산과 가공까지만 주로 관여했는데 갈수록 판매와 마케팅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한편으로는 전체 가치사슬의 뒷부분만 얘기하면 사기꾼으로 몰리고, 앞부분만 강조하면 빛좋은 개살구가 되기 싶상이죠.
ODA만 놓고 보면 제가 검토했던 많은 CTS, IBS 사업이 전자에 가깝습니다. 가치사슬 전체를 파악했다기 보다는 한부분만 연구하고 심사위원에서 어필해서 사업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DA의 가치는 계란으로 바위 깨트리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중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야 시작될지는 모르지만, 시작이 있어야 성공과 실패가 있다고 봅니다.
코이카사업과 IFAD, GCF, ADB 등 다양한 농업과 기후분야 원조개발사업들을 훑어 봅니다만 양자간 사업에서 과연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면을 보여야 ODA 투자에 대해 지금보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요.
-
세계적인 농업생산의 흐름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소농과 플랜테이션입니다. 식량의 70%는 small farm 이 공급합니다. 플랜테이션은 열대과일, 고급 축산물 등 식품이지만 위치재에 가까운 상품들을 공급합니다. 호주의 와규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인인당 GDP 3만 달러를 넘어서면 망고과 스테이크를 먹게 됩니다. 그 이상이 되면 유기농을 소비합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만 놓고 보면 이런 관점에서 이제는 식량수급의 대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플렌테이션 (대규모 영농, 200ha 이상)에서 공급되는 농산물은 남미, 호주, 중국에서 수급할 수 있습니다. 호두, 오렌지, 돼지고기, 민물생선 등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소득수준이 이미 높고 다품목소량으로 바뀐 식탁에서는 소농들이 생산한 상품들을 국내로 잘 운송하는데까지 연결해서 ODA사업발굴이 있어야 합니다.
우수농산물 생산기술은 여전히 우리가 잘할 수 있지만 이제는 안해도 되거나, 젊은 층의 인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산은 현지에서 하게 놔두고 선별하고 제품화 한 뒤 신선유통해서 한국의 식탁까지 운반하는 가치사슬로 새롭게 구성해야 합니다. 각 단계에서 품질관리(인증제도 도입), 콜드체인(차량도입, 운송시스템), 선별과 판매를 위한 도매시장 구축까지가 베트남이나 동남아에서 할 수 있는 농업분야 원조사업으로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제품 전시는 이 점에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작물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 제품이 우수한데 한국에는 아직 없고 없는 이유가 위에선 언급한 가치사슬의 빠진 고리들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민간업자가 나타나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수출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가공설비를 증설하고 원료확보를 위해 작물생산성 향상에도 투자하게 되겠지요.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는데, 결국 가치사슬에서 빠진 고리를 명확히 설명하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산업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많이 거창해 보이지만 작은 전시관이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스토어가 중간단계를 없애면서 전시관이자 판매장의 역할을 해 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ODA도 자칫하면 topdown 방식으로 결국 농민의 인건비나 농업환경을 착취하는 형태가 됩니다.
'도발과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래 살면 마을의 어르신이 된다. (0) | 2026.03.23 |
|---|---|
| 소리와 말은 다르다. (0) | 2026.03.11 |
| 편견과 오해 (0) | 2026.03.06 |
| 정보와 설득력의 상관관계 (0) | 2026.02.27 |
| 인간관계의 확장과 축소 (0) | 2026.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