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집에서 돌아다니면서 문득 그 때 그랬지 같은 기억의 단편이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다. 추억이라서 슬프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지만, 관계라는 것은 토대와 시간의 길이를 곱한 면적이라고 깨닫게 된다. 부정하고 미워해도 사랑과 애정이 있었고, 단지 기억일 뿐이라고 받아 들이고 싶지만 면적 만큼 기억에 감정이 더해져 추억이 함께 삐져 나온다.
마찬가지로 항아리에 물을 붓듯이 관계가 꾸준히 이어지면 기억이 더해져 추억도 선명해지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추억이 점차 희미해진다. 마지막에는 물 흔적처럼 아련한 감정만 남고 명확한 기억은 없어지겠지. 혹은 아빠처럼 치매에 걸린다면 대부분의 기억들은 흔적이 없어지고 가끔 사라지지 않는 상처의 흉터처럼 남은 기억만이 떠 오를지 모르겠다.
살아날 날을 기준으로 더 많은 경험이 더해지고 가득 찬 뇌에서 우선 순위를 달리해서 기억을 멀고 가까운 곳으로 재배치하면 역시 몇 가닥 남지 않고 대부분은 멀리 깊이 보관될 것이다. 회상을 하면 기억을 곱씹더라도 선명한 영상으로 보관되지 않고 시각장치를 이용해서 되새김질 하려고 해도 이미 감정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서 보더라도 내 기억에 남지는 않고 다만 전자기기의 신호로만 남아 있게 된다.
자연계를 아우르는 종상평균의 그래프처럼 삶과 죽음에 있어서 점차 고조되는 관계의 크기는 결국에는 0에 수렴하면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남은 것은 없는 상태가 될 것이고, 이것은 길이가 정해져 있는 생명체가 가지는 본질적인 속성일 것이다.
결국 무에서 시작해서 무로 돌아가는 것,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전했는지는 당사자가 판단하지 못한다. 남아있는 당사자와 시간만이 추억의 면적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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