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발과 생각들

신뢰의 사회적 비용과 기술보다 느린 행정

by chongdowon 2025. 12. 3.
728x90

사회적 신뢰 비용

사회적 신뢰도가 높을수록 공공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한참이나 된 이야기다. 문제는 알면서도 바꾸기 어렵다는데 있다. 혹은 역방향으로 바꾸는 것도 어렵다. 지하철을 탈 때 표를 검사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여러가지 이유로 적자가 있지만 한 부분으로 불법무임승차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다시 검표원을 도입 못하는 것과 같다.

과거의 보고서와 회계정산(국비보조 컨설팅사업)

연말이 되고 정산과 결산보고를 준비한다. 내가 갓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 했던 일과 같다. 1년간 일을 하고 10월말부터 보고서와 회계정산을 준비한다. 회계정산은 톨게이트 비용이 600원인 것까지 전부 스캔 후 A4용지에 붙이고, 전체 영수증을 한묶음으로 모아서 책으로 제본했다. 400페이지가 넘어서 겨우 제본을 하고 같은 책을 10권 만들어서 납품했다. 

보고서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는 컨설팅 보고서가 중심이다. 기본보고서에는 육하원칙에 맞춘 내용과 예산내역의 간략한 정리가 들어가고, 컨설팅 보고서는 말 그대로 1년간 중점적으로 연구하거나 조사했던 내용이 들어갔지만 아무도 안 본다. 컨설팅보고서로 문제된 적은 기억에는 없지만, 정산서는 내 실수를 포함해서 10번 이내로 수정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 때의 보조비사업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대대적으로 감사를 받고 많은 업체들과 회사 대표들이 벌금과 징역형을 받았다. 그토록 중요시했던 회계정산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자금을 쓴 사례가 많았고, 담당 공무원이나 감독기관의 직원과 결탁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가사업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적어도 회계정산 방식은 그와 달라지지 않았다. 천원 단위까지도 영수증을 붙여야 한다. 엑셀시트에 맞춰야 한다. 각 영수증의 내역이 무엇인지도 명시해야 한다. 미국은 많은 부분의 회계정산의 역할을 개도국으로 넘겼다. 영수증을 아예 배에 실어서 인도로 보내고 거기서 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AI와 은행전산망이 발달한 지금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서, 특히 회계사라는 직업이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회계정산 방식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POS기기에서 출력되는 영수증은 이미 세금부과체계와 연결돼 있다. 일일이 스캔해서 제출할 필요도 없다. 전체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거나 영상으로 찍은 다음 AI를 돌리면 된다. 내역을 AI가 분석하여 엑셀이든 어떤 장부의 형태든 원하는대로 만들라고 하면 된다. 영수증에는 시간과 장소(상호명)가 나와 있다. 보고서에 들어갈 업무 내용과 일치하는지 다시 AI로 검증시키면 된다.

바꾸기 어려운 이유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데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감독기관 사용자가 서로 교육을 다시 해야한다. AI시대에 가장 크게 문제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우리는 이미 만들어 놓은 사회적 합의의 틀을 AI기반으로 새로 조정해야하고 이 때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사회적 비용은 당연히 필요한 투자이며, 이 투자를 통해 다음 세대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결국 앞으로 감쇄될 비용을 미리 재투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감독기관 역량의 한계다. 해당 분야의 전문기관이고 전문가일수는 있지만, AI 혹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에는 기술자나 전문가가 없다. 많은 전문기관이라고 하는 곳들이 아주 제한적인 역량을 보이는 이유와 같다. 농업이 포함된 지원사업을 구상하고 예산을 발주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농업을 알지도 못하고 직접 평가하지도 못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그래서 관련 전문가를 도입하거나 외주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기관이 단독으로 만들 수 없다. 그 상위기관도 바뀐 체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포용과 행정

그래서 이 모든 변화의 중심은 중앙권력이 가져가야 한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면서 발전단가가 낮아지고 낮은 발전단가를 기반으로 데이타센터를 유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혁신적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포용적 정치체계가 있어야 한다. 열린 방식으로 기술을 도입하고 마찬가지로 기술을 국민들이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행정은 혁신적 기술의 사용에 제동을 걸 방법을 찾기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기술에 투자하기 유리하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결과물 역시 포용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덧붙이면

지금도 보고서와 회계정산의 형태는 정확하게 나와있다. 하지만 숫자만 다루는 정량적인 자료와 주어진 목차에 다 담을 수 없는 정성적인 보고서 두가지를 놓고 볼 때, 여전히 숫자에만 민감한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다. 얼마를 어떻게 썼는지 분명 중요하지만 돈의 가치가 양적으로만 판단되는 현실이 아직은 이 분야에서 사회적 신뢰가 없다고 느껴진다.

'도발과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확과 정산의 계절  (0) 2025.11.28
시간의 길이와 빈도를 계산하면 관계가 된다.  (0) 2025.10.15
프놈펜 특별여행경고에 대한 단상  (0) 2025.10.11
꿈과 49재  (0) 2025.09.26
시간을 따르다  (0) 2025.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