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박세연/어크로스/2024.5.21/구글전자책
표면적으로는 다수당체제이지만 사실상 민주당과 국힘당 양당체제에 가까운 우리나라가 일부 참고할 내용이 있다. 물론 우리는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소수당이어도 득표를 한 만큼 의석이 주어지기 때문에 극단적인 미국 사례와 같지는 않다.
정치공학적인 내용이라서 잘은 모르지만 현실에서 트럼프가 한번 쉬고 재선이 된 사례, 윤석열을 탄핵한 사례에 비춰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는 미국보다 앞서 나가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은 오히려 우리는 시민들의 피와 주검으로 이미 딛고 일어났따. 물론 극단적인 보수우경화와 이민자를 향한 혐오는 전세계적인 고민이며 동시의 우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2024년에 출판된 책인데 아마 2025년의 우리나라 현실을 봤으면 결론을 다르게 이끌어 가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은 사례 대신 한국을 바라보라고 했을 것 같다. 신대륙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한때는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세계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의 현실이 지금 눈 앞에 있다.
미국의 소도시 편향은 한국의 강남 편향과 같아서 백인순혈주의, 기독교 중심의 사고방식이 적용된다. 반대로 이들 세력은 소수지만 정치과 자본을 손에 쥐면서 오히려 세력을 흔들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강남불패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방이전이 계속 언급되는 것도 이런 세력을 와해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의 가장 가장 큰 문제점은 다수의 선택이 선거 결과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헌법(선거제도)을 바꾸기 어려운 점이다.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은 이제 힘을 가진 소수만을 위한 장치가 돼 버렸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지 않나?
아래는 본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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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다.
정당이 지는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뿌리릴 내릴 때, 정권 교체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국민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할 때, 정당은 패배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
권역 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태국) 민주당은 PDRC 시위에 참여했던 전문가와 대학생, 그리고 도시 중산층 유권자의 정당이었다. 그 정당의 기반은 주로 방콕과 태국 남부 일부에 집중되었다.
탁신은 가난한 농촌 지역을 겨냥한 정책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눈치 빠른 정치인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태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드러낸 반감은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려움은 때로 사회를 독재로 되돌리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적이고 확고하게 거부하는 데 반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헌법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따르지만 그 정신을 교묘하게 훼손시킨다.
정치인들은 종종 법망의 허점을 계속해서 이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악화시킨다.
헌법 조항을 부당하게 사용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21세기 독재 정권 대부분이 헌법적 강경 태도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민주주의를 점차 후퇴시킨다.
선거 광고 금지는 야당이 유권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통로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기능을 했다.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법적 보호가 필요했다.
흑인들이 계속 투표를 이어나가면서 민주당은 세력을 강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공화당은 포획에 취약한 상태로 전락했다. 실제로 공화당은 '인종적으로 보수적인 지지 기반에 포획되었다.
민족 집단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고 (맨 위에 백인이 있는) 인종적 수직체계를 형성했던 과거의 "인종적 질서"
다인종 민주주의의 성장은 미국 사회를 재편했다.
정당은 더욱 광범위한 유권자 집단에 호소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종종 그렇게 한다.) 반면 사회적, 인구 통계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당은 선거 재앙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법률전쟁이었다. 즉, 표면적인 목표는 투표 사기를 막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저소득층과 소수 및 젊은 유권자 집단의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백인 기독교인"은 이제 종교 집단이라기보다 민족 집단, 혹은 정치 집단에 더 가깝게 되았다.
매노컬과 매카시는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고자 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존폐보다 개인의 정치적 경력을 더 중요시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힘을 제한하는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지배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적, 정치적 삶에서 일부 영역은 "다수결의 범위를 넘어서"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학자들이 언급하는 "반다수결주의 제도"가 그 기능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보다 상위의 개념이지만, 다수의 지배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몇몇 핵심적인 반다수결주의 제도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반다수결주의 제도가 지나치게 만연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
많은 미국인은 헌법을 사실상 논박할 수 없는 문헌으로 숭배한다.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해방된 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족쇄를 찬 다수'다.
소수의 지배가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패자가 승리하도록 허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또한 국민의 삶과 밀접한 공공 정책에 교묘하게 영향을 미친다. 여론은 절대 완벽하게 정책이 반영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반다수결주의 제도는 뚜렷한 다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가난과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가로막고 있다.
힌때 민주주의 개척자이자 다른 나라의 모범이었던 미국은 이제 민주주의 세상에서 느림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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