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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과 생각들

당신은 유랑민 나는 정주민

by chongdowon 202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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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전에는 수렵과 채집으로 영양분을 채웠다. 여러 학설과 논란이 있지만 최근에 주도적인 입장은 농경이 필요해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다 굳이 시간을 정해서 일하고 생산한 것들을 공납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냥 손 닿는대로 먹고 쉬다가 배고프면 다시 배를 채우는 생활이 여유있지 않았을까.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말 그대로 일한 만큼만 먹을 수 있는 생활이다.

물론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해도 악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저장을 하고 움집이나 동굴에서 생활을 했다. 다만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면 제한된 지역 내에서 인구 증가나 먹이의 고갈로 경쟁이 발생해서 이동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수렵과 채집 생활은 정주하기 보다는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농업 종사자들은 본인이나 가족이 먹어야 할 열량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했다. 군집 생활을 이어가다가 권력이나 종교가 발생하면서 권력자나 제사장처럼 수렵채집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무리를 위해서 수렵과 채집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농축산업은 유목과 화전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비슷한 형태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화전민은 있는데 농경을 기반으로 잡초를 태우고 그 영양분으로 농사를 짓다가 지력이 떨어지면 이동해서 다시 화전을 일구면서 살아간다. 유목민도 비슷한게 한 지역에서 가축이 먹을 풀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화전도 마찬가지지만 지력이나 먹거리가 떨어졌을 때 뿐만 아니라 계절적인 변화에 따라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 들었던 생각이 나는 잘 돌아다니지만, 멈추면 아예 멈춘다였다. 아무래도 뼛속까지 화전을 위해 유랑하는 농부의 기질이 있나보다. 먹을게 떨어지만 한없이 떠돌아 다니지만 적당한 곳을 만나면 정착한다. 여기저기를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역시나 그 자리에서 충분히 먹을 것들이 없어서일 것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직업이나 직장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포함해서 현재 머문 곳에서 충분히 얻을 수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게 마땅할 것이다. 다만 지금의 기술로는 몸이 직접 이동하지 않더라도 정보를 얻고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이동하지 않아도 되거나, 반대로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더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에 성향과 선택을 통해 정주할 것인지 이동할 것인지 정할 수 있다.

이번에 아내와 여행을 하면서 오랜만에 멀리멀리 다녔는데, 역시나 나는 정주형에 가까운 인간이다. 내가 다닐 수 있는 거리는 해 뜰 때 출발해서 해 질 때 돌아올 수 있는 거리이다. 전통적으로 농민들의 행동양식과 같다. 집과 농지 사이의 거리는 한나절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와 문명의 확장으로 농민의 속성을 지녔지만 기술활용을 위해서 이 공간과 시간이 재해석되고 확장되었다. 집에서 24시간 48시간 떨어진 곳에서 뿌리를 박고 생활을 하고, 또 다시 뿌리를 뽑아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반대로 정주에 더 익숙한 인간형은 직업군도 다르지 않을까. 지역을 언제 어떻게 바꾸든 더 쉽게 자리잡고 사람을 만나고 밥벌이를 할 수 있다.

예전이라면 두가지 다른 속성을 가진 사람이 함께 살기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확장은 이런 일이 쉽고 단순해졌다. 유랑은 유랑대로 하고 삶의 근간을 포장해서 이사하기가 쉬워졌다. 결국 두가지 유형의 인간은 선택의 목표는 삶의 방식이지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거나 영향을 미치는 주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간의 변형을 통해 상호 합의 가능한 삶의 방식을 이루는데 합의점은 두사람의 공간이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익이지, 타인에 의해 더이상 크게 영향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무리 생활할 때와는 달리 가족이나 부족의 개념도 약화되면서 부부나 부부를 포함한 자식, 부모와 본인 그리고 자녀와 같이 축약되면서 최소한의 무리를 이룬 가족의 단위는 흡사 1인의 개인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무리 내에서 교집합의 크기만 충분히 크다면 형태를 달리한 삶의 방식도 충분히 교감하고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100명이 하나의 삶을 살았지만 이제 100명이 100가지 이상의 삶을 사는 시대가 이미 왔다. 어제와 나와 오늘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조차 달라진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