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발과 생각들

동남아시아의 만달라와 닭싸움

by chongdowon 2026. 1. 26.
728x90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 마지막 챕터인 10장을 읽는 중인데, 주말에 한 지역 언론에서 캄보디아 닭싸움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끄적여본다.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에 만달라 체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유럽의 피라미드 구조와 달리 동남아시아는 만달라 지배체계로 중심에서 멀어지면 관리가 안 된다. 처음에는 이게 피라미드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연중 온난하고 야생에서 탄수화물(과일)과 단백질(물고기)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권력이 중앙집권화하기 어렸웠다. 산으로 도망쳐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권력의 지배 아래에서 농경을 할 이유가 부족했다.

농지는 많고 노동력은 부족했기 때문에 전쟁의 양상은 심각한 전투보다는 노예를 획득하는데 있었다. 어떤 전투에서는 사망자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노예는 유럽의 노예 개념과는 달랐고, 권력자의 자산이었지만 일정한 권리도 행사할 수 있는 노동력에 가까웠다. 유럽이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험된 치열한 전투로 살생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식민지화 사례에도 있지만, 한 지역의 인구를 몰살시키고 다른 지역의 노예를 끌고와서 플랜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인간사이의 전투를 보는 대신 호랑이, 코끼리, 닭으로 싸움을 시켜 피를 보는 즐거움을 대신했다. 그런데 호랑이와 코끼리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어 묶어 두는 바람에 갈수록 재미가 줄어들었고, 더 적극적이고 피를 보는 닭싸움에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이슬람화 이전 자바의 비문들과 발리에서 지금도 여전한 관행을 보자면 닭싸움은 늘 종교적으로 중요했고 사원의 의식, 정화 순례에 빠리지 않았다. 싸움 직전에 신에게 바치는 닭 피는 희생적 속죄로 여겨졌다. 오래전에 싸우는 동물의 피를 인간 피의 대체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도박 중에서도 닭싸움이야말로 가장 인기였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수탉과 남성의 자존심을 동일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에서 발췌

불교와 이슬람 종교의 전파로 불필요한 살상은 점차 줄어들면서 제도적으로 닭싸움은 금지되었지만 관행적으로 빈번하게 행해졌고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캄보디아도 매번 투계를 단속하고 엄중한 벌금을 매기지만 명절이나 남자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투계판이다. 생닭은 1kg에 3달러 정도지만 투계판에 올라가는 닭은 보통 1-200달러이거나 제법 실력이 좋으면 1천 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시작은 인간의 전투를 대신했을지 모르겠으나 점차 남성성이 투영되면서 직접적인 싸움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반드시 있는 경기이다 보니 내깃돈이 걸리고 도박판이 된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법적으로 금하고 있다. 무에타이처럼 캄보디아에도 보까또라는 격투기가 있지만 주말이나 명절 그리고 TV중계로만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흔하고 가까우며 선수를 직접 양성할 수 있는 투계가 시골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고 근절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