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대면하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들고 조심성이 늘어날수록 남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제목 역시 말이 길어진다라고만 해도 이해가 될 것을 이걸 문장으로 쓰면 길어진다.
꼭 미사여구를 붙여서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해할까봐 설명을 붙이다 보니 길어지고, 그냥 말하면 예의가 아닐까봐 인사를 붙이다 보니 길어진다.
예를 들어, 오늘 회의는 제가 순서대로 진행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될텐데, 오늘 회의는 시간이 짧은 관계로 빨리 마무리하고자 부득히하게 제가 주도하여 안건의 처음부터 순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된다. 심지어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고 말을 하면서도 왜이리 길게 말하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꺼져 혹은 저리 가라고 짧게 말할수도 있지만 굳이 다른 곳으로 가십시오 처럼 정중하게 말을 전달하게 된다. 말이란 의사전달이 명확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오해가 생기면 원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논에서 일하다 보면 말이 짧아진다. 소리로 전달해야 할 공간이 멀기 때문에 짧고 간결하게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축약된 단어와 큰소리로 한번에 발성해서 소리를 내는게 유리하다. 그리고 소리의 구분이 애매모호하지 않도록 단어를 정하게 된다. 바다 위에서나 공장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소리로 전달하는 공간이 조용한 사무실로 바뀌면서 문장이 길어지게 된다. 존대를 나타내는 말이 붙고, 본론을 전하기 전에 시시콜콜한 인사도 길게 붙이게 된다. 굳이 같은 날 비슷한 시산에 비슷한 장소로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날씨를 먼저 언급한다. 자료를 발표하는데 존댓말이 굳이 필요할까.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자료의 내용이지, 나이나 직급에 따라 공손함을 전달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발표에 존대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모국어라서 유창하다는 가정과 나이와 사회적 계급의 변화가 이런 현상을 더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캄보디아어는 10년 넘게 사용했지만 유창하지 않고 듣기보다는 말하기 위주의 언어로 사용했고 특히 지배자의 언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말이 길지 않았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언어학습성취 역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거기에 덧붙여 쓰는 언어가 안되고 말하는 언어만으로 구사하다 보니 새로운 어휘나 신분 상승에 따라 사용해야 할 어휘를 배우지 못하고 아이와 학생 그 중간에 있는 언어만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지금 새롭게 배워야 하는 베트남어는 당연히 더 심각하고 우리말을 처음 배울 때와 같다. 숫자와 일부 명사만 듣고 말할 수 있으며, 알아 듣지 못하는 말들은 그냥 무시한다. 들어야 할 이유는 수백가지가 넘지만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어 정도만 하더라도 의사소통은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캄보디아에서 생활할 때보다 많은 영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경험과 어휘의 한계와 함께 쓸데없는 말을 지양하는 성향상 영어를 사용한 기간에 비해 숙련도는 캄보디아어와 큰 차이가 없다.
아마 영어의 사용 역시 대부분 캄보디아에서 업무 현장에서 그리고 관리자의 언어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도 회사에서 쓰는 어휘와 외부 회의에서 쓰는 어휘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 적이 많다.
말이 길어지고 미사여구를 붙여 나가는 과정이 마냥 좋지도 않고 시간도 없는데 굳이 말을 길게 늘려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다. 그래도 어휘의 확장은 대화에 있어서 다양한 내용을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해당 언어를 쓰면서 말이 길어지고 있을 때 어느 정도 그 언어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정확한 언어전달력이 생겨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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