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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과 생각들

인간관계의 확장과 축소

by chongdowon 2026.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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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 인간관계가 마냥 컸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생산물에 비해 잉여인구가 지나치게 많으면 집단은 무너지게 된다. 인위적인 인구 조절을 위해 영아살해와 같은 문화가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베트남의 신년 명절은 뗏Tet으로 음력절기의 우리 설날과 같다. 다만 아직 가족중심사회가 강하고 연간 휴일이 적어서 설이 있는 날을 중심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의 휴무를 가진다.

우리도 한때는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마을 내에서의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이들은 농번기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공동육아도 담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벼농사에서 모내기가 도입되면서 모내기와 수확기에 집중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천과 옷감을 만드는 노동은 대체로 가정 내 여성이나 양반가에서는 노비여성이 담당했는데 일인 작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집단 노동력이 필요한 과정은 아니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계는 복잡해지고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다. 농경시대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까지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을 더이상 혼자서 할 수 없게 되었다. 기계의 많은 부품처럼 기계를 작동하고 수리하는 인간의 역할도 부품단위로 나눠졌다. 부품산업과 컨베이어형 공장으로 그 발달단계를 알 수 있다. 인간 관계 역시 부품과 같았다. 각각의 역할만 중요했고 따로 떼어놨을 때 기능은 없었다.

제3 물결인 지식과 정보의 사회가 되자 다시 인간의 기능적 역할과 관계는 재조정된다. 지식산업이 발달하면서 개인이 감당하는 역할의 크기가 달라지고 생산력도 달라졌다. 일인당 총 생산량이 산업화 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 인간과 인간은 전자신호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농경사회에서 물리적인 연결, 산업화에서 기계를 통한 연결에서 통신망을 통한 연결이 강화되었다. 더이상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도 함께 일할 수 있고 더이상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농경사회에서는 절기에 따라 파종과 수확이 이루어졌고, 산업화사회의 분업은 각 단계가 수행되어야 완성이 되었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거미줄처럼 엮인 관계와 정보의 흐름으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부족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는 100-150명 내외다. 부족이 확장되어 마을이 되고 작은 세력이 되면 다시 이것이 뭉쳐서 국가가 되었다. 현대에서는 이렇게 많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100명의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함께 나누고 심지어는 명절이라는 관습 아래 함께 밥과 술을 먹는 관계가 필요없다. 굳이 AI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보화사회에서는 개인의 역할과 생산성이 고도화되면서 훨씬 더 적은 사람으로 조직을 지탱할 수 있다.

농장에서 일할 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직원도 있지만 언젠간 쓰임이 있다. 철저하게 농경시대와 산업화시대를 섞어 놓은 듯 했다. 정비만 하는 사람, 청소만 하는 사람 등 대부분은 기능적으로 기계의 부품에 가깝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 관찰자(관리자) 역할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싫든 좋은 최소 백 여명의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물리적 형태의 기계적이면서도 피라미드 계층구조가 형성된다. 한편으로는 식민지형 농장을 운영하는게 가장 적합한 인적체계였는지도 모를겠다.

지금 일하는데서는 인간관계가 대폭 축소되었다. 내가 소속된 사무실은 많아야 네명이고 관계해야 할 사람들 역시 많아봐야 스무명 내외다. 구조적으로 의사결정과 책임을 위해 누군가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 외에는 각자의 임무 수행에 있어서 역할분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 각자가 한 명 분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에 안착할 것이고 부품 정도의 역할만 한다면 18세기 정도에 머물게 될 것이다. 

다행히 한 달도 안된 기간 동안 일해 본 바로는 적어도 책임자인 내 능력은 뛰어 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고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긍정적인 새로운 관계는 내 삶의 다음 행보를 결정하게 된다. 농경사회에서의 풍요로운 수확이 다음 한해를 버티는 힘이었다면, 훌륭한 동료와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지적활동을 더 촉진시키는 한편 업무시간 역시 단축시켜주면서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내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를 부여하는 것으로 매일 정해진 틀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게 해 준다. 잉여시간에 창발적인 활동을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

이제 곧 설인데 설은 정월경사회에서 인간관계가 마냥 컸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생산물에 비해 잉여인구가 지나치게 많으면 집단은 무너지게 된다. 인위적인 인구 조절을 위해 영아살해와 같은 문화가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베트남의 신년 명절은 뗏Tet으로 음력절기의 우리 설날과 같다. 다만 아직 가족중심사회가 강하고 연간 휴일이 적어서 설이 있는 날을 중심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의 휴무를 가진다.

 

우리도 한때는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마을 내에서의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이들은 농번기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공동육아도 담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벼농사에서 모내기가 도입되면서 모내기와 수확기에 집중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천과 옷감을 만드는 노동은 대체로 가정 내 여성이나 양반가에서는 노비여성이 담당했는데 일인 작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집단 노동력이 필요한 과정은 아니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계는 복잡해지고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다. 농경시대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까지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을 더이상 혼자서 할 수 없게 되었다. 기계의 많은 부품처럼 기계를 작동하고 수리하는 인간의 역할도 부품단위로 나눠졌다. 부품산업과 컨베이어형 공장으로 그 발달단계를 알 수 있다. 인간 관계 역시 부품과 같았다. 각각의 역할만 중요했고 따로 떼어놨을 때 기능은 없었다.

 

제3 물결인 지식과 정보의 사회가 되자 다시 인간의 기능적 역할과 관계는 재조정된다. 지식산업이 발달하면서 개인이 감당하는 역할의 크기가 달라지고 생산력도 달라졌다. 일인당 총 생산량이 산업화 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 인간과 인간은 전자신호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농경사회에서 물리적인 연결, 산업화에서 기계를 통한 연결에서 통신망을 통한 연결이 강화되었다. 더이상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도 함께 일할 수 있고 더이상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농경사회에서는 절기에 따라 파종과 수확이 이루어졌고, 산업화사회의 분업은 각 단계가 수행되어야 완성이 되었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거미줄처럼 엮인 관계와 정보의 흐름으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부족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는 100-150명 내외다. 부족이 확장되어 마을이 되고 작은 세력이 되면 다시 이것이 뭉쳐서 국가가 되었다. 현대에서는 이렇게 많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100명의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함께 나누고 심지어는 명절이라는 관습 아래 함께 밥과 술을 먹는 관계가 필요없다. 굳이 AI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보화사회에서는 개인의 역할과 생산성이 고도화되면서 훨씬 더 적은 사람으로 조직을 지탱할 수 있다.

 

농장에서 일할 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직원도 있지만 언젠간 쓰임이 있다. 철저하게 농경시대와 산업화시대를 섞어 놓은 듯 했다. 정비만 하는 사람, 청소만 하는 사람 등 대부분은 기능적으로 기계의 부품에 가깝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 관찰자(관리자) 역할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싫든 좋은 최소 백 여명의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물리적 형태의 기계적이면서도 피라미드 계층구조가 형성된다. 한편으로는 식민지형 농장을 운영하는게 가장 적합한 인적체계였는지도 모를겠다.

 

지금 일하는데서는 인간관계가 대폭 축소되었다. 내가 소속된 사무실은 많아야 네명이고 관계해야 할 사람들 역시 많아봐야 스무명 내외다. 구조적으로 의사결정과 책임을 위해 누군가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 외에는 각자의 임무 수행에 있어서 역할분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 각자가 한 명 분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에 안착할 것이고 부품 정도의 역할만 한다면 18세기 정도에 머물게 될 것이다. 

 

다행히 한 달도 안된 기간 동안 일해 본 바로는 적어도 책임자인 내 능력은 뛰어 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고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긍정적인 새로운 관계는 내 삶의 다음 행보를 결정하게 된다. 농경사회에서의 풍요로운 수확이 다음 한해를 버티는 힘이었다면, 훌륭한 동료와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지적활동을 더 촉진시키는 한편 업무시간 역시 단축시켜주면서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내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를 부여하는 것으로 매일 정해진 틀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게 해 준다. 잉여시간에 창발적인 활동을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

보름달이 차 오르는 과정처럼 관계도 서서히 차 오르게 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떤 관계는 평생 보름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연결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더 복잡해지고 많아졌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초승달과 같은 관계에 머무른다. 영리와 생산활동을 해야하는 나이에서는 이런 관계가 무수히 많을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뒷켠으로 물러날 때가 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수의 보름달과 같은 인간관계만 남게 된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 외 나머지 인간관계는 사회보장복지로 충당이 된다. 혹은 된다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좋은 동료가 곧 복지라는 말이 사실에 가깝고, 그런 관계를 맺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특히 대가족이란은 개념이 거의 사라진 우리 사회에서는 혈연의 가족보다는 바로 현재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친구나 동료 (때로는 같은 개념일수도 있다.)와의 관계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