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과, 풀이 눕는다, 구글전자책, 2017.8.28
뉴스공장에서 박구용교수가 몇 번 언급을 해서 읽어봤다. 젊은 예술가의 고뇌 담긴 책이라는 해설을 봤다. 시작부터 미친년이라는 말이 바로 튀어 나온다. 읽다보면 주변에도 이런 사람, 약한 버전의 이런 사람이 한둘씩은 있지 않나? 아니면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주변에 이런 부류가 꽤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실용과 비실용의 차이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공을 영어로 표현하면 응용생물학이다. 말 그대로 이론을 현장에 바로 쓰는 학문을 배웠고 취업이 목표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기타 동아리에 몰입하더나 전공인 듯 아닌 듯 친환경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의 몸은 제각각이고 성장 속도도 다른데 개월수도 아니고 연차별로 나눠서 같은 옷을 던져 주고 입어야만 하는 것과 같다.
예술가의 혼이나 그 감성은 잘 모르겠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아닌 사람이 있다. 아마 99.99%의 인류는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는 그저 범부필부로 살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주인공의 삶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나마 가족의 조그마한 도움으로 자신의 희미한 꿈을 조금씩은 열어보지만 종착지의 희망은 없다.
물론 글 전반에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대성하기는 어렵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시대나 환경을 비난하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좋아하는 것 - 풀을 사랑하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 을 꾸준히 하고 싶을 뿐이다. 우연한 계기로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부류를 만나게 되지만 함정이 있다. 바로 자본이다. 창작의 결과물과는 상관없이 자본으로 사회에 어울리고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다. 주인공은 애초에 그런 사회성 조차도 없었다. 결론은 비극으로 나타나지만 그것 역시 지금 사회에서는 실패도 실망도 아닌, 슬픔일 따름이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얼마나 많은 간극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급여를 받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비슷한 열정과 회한은 항상 공존한다. 배운 것을 활용하는데 더 올바르고 더 나은 가치를 지향하지만, 시간과 돈에 쫓기다 보면 일상과 타협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을 내 던지지 못한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용기일 수 있다.
작금의 일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안전장치가 존재하지만 그 역시도 안전장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노출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많은 계층과 부류가 존재한다.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스스로가 주인공인 한편의 소설이듯이, 누구에게나 나름의 고충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 혹은 창작자들에게 더 관심이 없을 뿐이다. 기술을 배우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꾸준한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림을 배우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호막이 없는 것이 그런 차이다.
누워버린 풀의 그림들은 50년 뒤에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받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요절한 작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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